우리는 모두 감싸 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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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감싸 안자
  • 김정택(의사)
  • 승인 2011.04.2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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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장 아무개 도의원이 미신공화국 발언을 했다가 문화 예술인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신앙이 독실할수록 자신의 종교 외에는 유사종교․미개종교․미신신앙․우상숭배로 보이는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돌멩이나 나무를 섬겨도 지성으로만 섬기면 거기에서 영적 감응을 받는 이가 없지는 않다. 어리석은 중생들이 모르고 믿어온 민속이라도 우리들의 전신이며 문화이다. 이른바 ‘굿’이라는 민간신앙도 대자연과 소통하고 대중을 위로한다는 점에서 종교의 본질과 다름이 없다.

굿의 바탕에는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소망이 깃들어 있다. 영등굿이 인류의 보편적인 세계무형문화유산이 된 이유는 심방의 종교의식(儀式)뿐만이 아니라 바다 일터에서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애환과 소망을 한바탕 축제로 승화한 데 있을 것이다.

어느 종교에나 자신들의 종교를 표현하는 상징들을 갖고 있다. 가령, 산신각이라는 당우에는 산신을 봉안하고 있다. 산신은 원래 불교와는 무관한 토착신이고 재래신앙이었으나, 불교가 호법신중(護法神衆)으로 포용했고, 후대에 불교 안에서 원래의 성격을 되찾은 것이다. 이제는 산신이 가람수호신으로서의 기능과 함께 산중생활의 외호신(外護神)으로서도 받들어진다. 자연에 대한 감사와 모든 피조물에 대한 경외가 배어있다.

무속신앙은 외래 신앙인 불교가 전입되기 이전의 토착신앙이다. 불교와 상호 영향을 끼치며 융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산신각은 문화복합현상의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자기를 낳고 키워준 제 땅, 제 조상, 제 역사와 사상을 업신여기고 소홀히 대하다 보면 제 고장의 문화는 사라지고 외래화되고 어느덧 사대주의에 빠져버린다. ‘구원받은’ 자기네 신도들끼리만 똘똘 뭉쳐서는 종교 숫자만큼 대중들도 분열되고 말 것이다. 나아가 ‘악의 정죄’라며 때로 불상 파괴나 도량 오염으로 치닫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종교간 갈등이 있었다면 대부분 기독교와의 관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므로 사회 공동체를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공존해 나갈 수밖에 없다. 송무백열(松茂柏悅)이라는 말이 있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이다. 가톨릭 도내 교세는 제사와 조상숭배를 인정한 지난 20여년 사이에 급격히 늘어났다고 한다. 청병(淸病)에 걸려 있으면 큰 병이 되어 청탁(淸濁)을 다 포용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을 거느리지 못한다.

그러나 부처님은 아는 듯 모르는 듯 대중과 어울리다가도 법으로 이끄는 능력이 있으므로 청탁을 자유자재로 이끌고 포용하신다.

기독교에서 배울 점도 많다. 성운 스님의 고언이 생각난다. 그는 사회봉사에 적극적인 기독교가 없었다면 불교는 여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중생들과 고락을 함께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기독교는 한국 불교를 깨워준 은인이라고 하셨다.

정산종사 말씀하시기를 “진급하는 사람은 인자하고 겸손하고 근실하며 공한 마음으로 굴기하심하고 경외지심으로 남을 공경하며 덕화로써 상하를 두루 포용하고 공부와 사업을 쉬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기독교인들도 제주도의 서민 문화와 민속이라는 측면에서 민간신앙을 이해하고 제주인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야 하며, 제주인들 역시 기독교인들의 가치관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종교 간 벽허물기와 화해의 몸짓이 그리 낯설지 않다. 개방성, 다양성, ‘다름’에 대한 상호존중 등은 이제 세계적 추세이다.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나와 같아질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신앙인들이 새겨야 할 금언이다. 이웃 종교에 대한 이해와 열린 마음이야말로 다종교 사회의 구성원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전제조건이기 까닭이다.

올해도 성당 앞에 ‘부처님오신날 함께 기뻐합니다’라고 쓰인 플레카드가 걸릴 것이다. 돌아가신 두 성현이 합석하신 적이 있었다. 서울 길상사에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기념음악회에 김수환 추기경이 법정 스님과 3천 대중과 나란히 앉아계셨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불교 형제자매가 올해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할 때 기꺼이 그들과 함께 축하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빌고 싶다. 모든 종교의 신자들이 부처님의 오심을 기뻐하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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