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강좌<불교의 생명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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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강좌<불교의 생명윤리>
  • 제주불교
  • 승인 2005.01.1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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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생명관…緣起의 무실체적 자아 지향

“불성에 입각한 만인 평등사상 인식해야”



생명윤리를 중요시 여기게 된 배경에는 의료기술의 발전과 대중화, 병원 중심의 의료행위, 인구·환경문제, 연기적 생명관의 확립 등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생명윤리의 제반문제들은 생명의 탄생, 인간의 존엄성과 연관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생명의 탄생과 연관한 문제들은 임신중절을 비롯한 인공수정, 대리모 출산, 남아선호, 안락사, 뇌사와 장기이식, 줄기세포를 통한 생명복제 등이 있고, 인간의 존엄성과 연관해서는 인권경시, 사형제도, 전쟁, 성·노예매매, 인종·종교탄압 등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어떤 시각으로 접근해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연 생명의 시작은 언제부터인가?’라는 문제인식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특히 ‘배아는 언제부터 인간으로 보아야 하는가?’라는 부분에서는 일부 국가에서 배아의 원시선이 생기는 14일이 지난 배아부터 인간으로 보거나, 배아도 태아와 마찬가지로 수정란부터 인간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견해들은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논리적 근거가 미흡한 현실이다. 결국 어떠한 견해를 따르느냐, 즉 인간이 인간의 시작을 언제부터 보느냐에 따라서 실험이냐 아니면 살인이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불교의 생명관은 전생의 업력과 생명체를 인정한 전제 하에서 가능한 것으로, 개인에 의해 영위되는 일련의 생명 현상에 있어 그 최초의 출발점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부모의 정자와 난자뿐만 아니라 전생의 업력[중유, 中有]이 서로 결합할 때 현세의 한 생명체가 가능하며, 현세의 생명체는 미래의 업력으로 그 생명을 이어간다. 이러한 반복적 순환과정은 불교의 생명관이 상호관계[연기, 緣起]에 의해 연속적으로 형성되는 무실체적 자아[생명]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전생의 중유가 자신의 업력에 따른 부모를 만나 수태를 하게 되는 그 순간을 ‘생유(生有)’라고 하는데, 정자와 난자, 중유가 화합하여 수정을 이룬 최초의 단계를 ‘가라라(Kalala)’라고 한다. ‘구사론’에 따르면 ‘가라라’는 세 가지의 구성요소, 즉 호흡과 관계된 ‘명(命)’, 인간의 인지능력을 의미하는 ‘식(識)’, 열과 체온을 의미하는 ‘난(煖)’으로 이뤄져 있다. 즉 이 세가지 요소가 하나로 된 것이 생명체로서 살아 있는 것이며, 여기에는 자신의 모든 업력이 인지되어 있어 자신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의 운명을 담지하고 있다. 결국 줄기세포를 통한 생명복제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그 업력까지 복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생명윤리의 실천을 위해서는 불살생의 아힘사(Ahimsa)와 무연자비의 실천, 연기적 세계관의 정립과 사회적 역할 인식,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무외시(無畏施)를 완성하는 불교적 정신, 불성사상에 입각한 만인 평등사상 인식 등을 그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다.

무엇보다 생명은 그 자체가 목적이지 결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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