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법문- 전 조계종 교육원장 무비 스님
상태바
지상법문- 전 조계종 교육원장 무비 스님
  • /제주불교
  • 승인 2011.08.25 0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님들의 위신력 모여 중생 구제”




먼 길 떠나는 아들과의 약속 저버려


재 대신 향락에 빠져 끝내는 죽게돼






지옥에서 고통 받는 어머니 구제 위해


해제 때 스님들께 지극정성 공양 올려




[그림1]우란분재라는 말은 ‘우란분’이라는 단어와 ‘재’의 합성어입니다. ‘우란분’은 범어의 ‘울람바나’를 음역한 것으로 도현 즉 거꾸로 매달린다는 뜻입니다. 재(齋)라는 말은 ‘우포사다(몸과 마음을 청정히 하고 행동을 삼간다, 부정을 피한다)’라는 범어에서 온 것입니다.

백중, 즉 우란분절에 절에서는 돌아가신 부모나 살아계신 부모님을 위해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고 지성으로 우란분재를 지냅니다. 우란분재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에서 제일가는 효자였던 목건련 존자가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천도한 것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우란분재의 유래에 대해 『우란분경』과 『목련경』을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부유한 상인이었던 목건련 존자의 아버지는 존자가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존자는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먼 나라로 장사를 떠나게 되었지요. 존자는 어머니 청제 부인에게 간곡하게 당부하였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남기신 재산 중 3분의 1일 드리겠습니다. 제가 집에 없는 동안 매일 스님들을 청하여 아버님의 극락왕생을 위한 재를 베풀어 주십시오.”

“아무렴, 당연히 재를 올려드려야지. 어찌 재만 지내겠느냐? 너의 무사 귀환과 사업 성취를 위해서도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할 테니 안심하고 잘 다녀오너라”라는 청제 부인의 말씀을 믿고 목건련 존자는 마음 편히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마을 어귀까지 나와 아들을 전송하면서 굳게 약속한 청제 부인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 모든 것을 어겼습니다.

스님들 대신 놀기 좋아하는 남녀를 집안으로 끌어들였고, 재를 지낼 음식 대신 향연을 위한 고기와 술을 장만하여 노래하고 춤추고, 남자들과의 향락에 빠져 헤어날 줄 몰랐지요.

열심히 노력한 끝에 큰 이익을 남긴 목건련은 고향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는 이번 장사 길에 자신이 무사하고, 장사가 매우 잘 된 것도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어머니가 그리웠습니다. 어머니를 다시 뵐 생각을 하니 기쁘기 그지없었지요.

그런데 고향 마을 어귀에 이르렀을 때 생각지도 않았던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방탕한 생활에 대한 소문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지요.

목건련은 데리고 다니던 시종을 집으로 보내 소문에 대한 진위 여부를 확인하게 했습니다. 시종은 집에 도착하여 상황을 살펴본 결과 헛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습니다. 이에 당황한 청제 부인은 돈으로 시종을 매수하여 목건련에게 거짓을 고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목건련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향연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스님의 가사를 입혀 거짓 재를 지내게 하였습니다.

시종에게 소문과는 달리 별 문제없이 재를 잘 지내고 계신다는 말을 듣고 목건련은 ‘그럼 그렇지’하면서 기분이 좋아져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아들을 맞이하는 어머니의 얼굴이 예전처럼 맑지 않았습니다. 삿된 기운이 가득한 어머니를 보고 목건련이 소문에 대해 여쭈었지요. 어머니는 소문을 단호하게 부정하면서 굳게 맹세했습니다.

“내가 만약 지금 너에게 거짓말을 했다면 오늘부터 7일 안에 죽어 지옥에 나서 도현의 고통을 면치 못하리라.”

“어머니, 잠시라도 어머니를 의심한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십시오. 앞으로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겠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7일 후 청제 부인은 갑자기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즉사하였습니다.

“아들아, 나 좀 살려다오!”라는 한마디 말만 남기고 눈앞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에 목건련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산자야’라는 바라문을 찾아가 어머니가 어디로 가셨는지, 천도해드릴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그대 어머니의 간 곳을 알고 싶고, 어머니를 좋은 곳으로 나게 하고 싶으면 모든 재산을 우리 교단에 바치고 선정과 고행을 닦아라. 그리하여 신께서 그대의 어머니를 천상에 나게 해 줄 것이다.”

순진한 목건련은 바라문의 말을 믿고 모든 재산을 교단에 헌납한 다음 도를 닦았습니다. 하지만 신의 가피는커녕 어머니의 간 곳조차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니 날 목건련은 도반인 사리불로부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출현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리불과 함께 부처님을 찾아가 제자가 된 목건련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여 육신통을 갖춘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의 한 분으로 신통제일 목건련 존자로 불리게 된 것이지요.

신통력이 생긴 목건련 존자는 가장 먼저 어머니가 가신 곳부터 살펴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지옥에 아귀로 태어나 형틀에 거꾸로 매달린 채 음식은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여 피골이 상접하였습니다.

효성이 깊은 목건련 존자는 발우에 밥을 담아 어머니께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황급히 왼손으로 발우를 들고 오른손으로 밥을 움켜쥐었습니다. 그러나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밥은 불덩이로 변하였습니다. 부처님 제자 가운데 신통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목건련 존자였지만 아귀가 된 어머니에게는 밥 한 술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목건련 존자는 슬퍼하며 부처님께로 달려갔습니다. 부처님께 이 모든 경황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리자, 부처님께서 이르셨습니다.

“네 어머니 청제 부인의 죄는 그 뿌리가 매우 깊어 1겁 동안 아귀의 과보를 받아야 하느니라. 더욱이 ‘거짓말을 한다면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겠다’는 맹세를 한 과보를 그대로 받는 것이니라. 네 신통력이 아무리 뛰어나고 효성이 천지를 감동시킬지라도 네 어머니의 죄는 소멸시킬 수 없느니라. 하지만 여러 스님네의 위신력을 구하면 해탈할 수 있느니라. 내 이제 구제법을 설하여 너를 위시해서 세상의 모든 어려운 이의 근심, 괴로움, 죄업을 소멸할 수 있도록 해 주겠느니라.”

부처님께서는 목건련 존자에게 스님들의 안거 해제일인 음력 7월15일에 시방의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려 어머니의 죄를 소멸시키는 구제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목건련 존자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스님들께 지극한 정성으로 공양을 올리는 우란분재를 지냈습니다. 그 덕분에 어머니 청제 부인은 1겁 동안 받아야 할 아귀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목건련 존자의 예를 들면서 우란분재를 올리는 불자들의 마음가짐에 대해 결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가 길러주고 사랑해 준 은혜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우란분재를 행하라.”

우란분재를 올리는 음력 7월15일은 ‘하안거 해제일’로서 스님들이 여름 3개월간의 공부를 마치는 요즘으로 치면 방학을 하는 날입니다. 다시 말해 선정을 닦던 많은 스님들의 수행력이 결집되는 날이라고 할 수 있지요. 또한 이날은 ‘자자일’이기도 합니다. 자자란 스님네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동안 수행한 것에 대해 점검을 받기도 하고 공부하면서 있었던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기도 하고, 다른 스님들의 잘못을 지적하기도 하며 잘못을 깨우치는 날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의 기운이 참으로 대단한 날이라고 할 수 있지요. 더욱이 시방의 성현들과 십지의 보살들이 비구의 모습을 하고 대중들 가운데 있으면서 중생의 복덕을 위해 자비심으로 공양을 받는다고 하니, 이날 공양을 올리면 그 공덕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경전에 의하면, 백중날 스님들께 백 가지 맛의 음식과 다섯 가지 과일 등을 공양하는 등 큰 정성을 보이면 시방세계 대보살님들과 스님네의 수행 공덕으로 중생의 비원을 성취함과 동시에 현생의 부모와 이전 여섯 생의 부모 그리고 가까운 친족들이 삼악도의 괴로움을 벗고 천상에 태어나 무량한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전국의 많은 사찰에서 음력 7월15일 우란분절을 맞이해서 천도재를 봉행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모와 조상의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기도한 힘과 스님들이 3개월 동안 수행한 힘이 합해진 백중날에 천도재를 봉행하면 온 법계에 영가를 구제할 수 있는 기운이 충만해 있어서 더욱 쉽게 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란분재, 곧 백중기도의 목적인 것입니다.



무비 스님


부산 범어사에서 여환 스님을 은사로 출가. 해인사 강원을 졸업하였으며 해인사, 통도사 등 여러 선원에서 안거하였다. 그 후 오대산 월정사에서 탄허 스님을 모시고 경전을 공부한 스님은 탄허 스님의 법맥을 이은 대강백으로 통도사 ? 범어사 강주, 조계종 승가대학원장, 조계종 교육원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범어사에서 집필 활동과 아울러 전국 각지의 법회에서 불자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