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큰스님 사자후를 하소서-청화 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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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큰스님 사자후를 하소서-청화 큰스님
  • /제주불교
  • 승인 2011.08.3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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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은 현상만 보고, 성자는 본바탕을 본다




실상염불, 소리만 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본바탕를 그대로 생각하면서 해야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의미 깊이 새겨

우리가 꿈을 깨 참다운 진리 향해 가야





실상염불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진리 자체를 우리가 상상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진리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실상염불은 우리 눈에 보이는 대상이 아닙니다. 보이진 않지만 이 우주는 부처님 생명이란 말입니다.

관무량수경에 훌륭한 말씀이 있습니다. 시방여래는 법계신이라 하는, 아주 고도한 진리를 담은 말씀입니다. 즉 모든 부처님은 우주를 몸으로 합니다. 이런 말씀은 방편을 떠나버린, 진리 그대로의 말씀입니다. 우주 자체가 부처님의 몸이란 뜻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이것이 바로 대승불법이 됩니다. 우주 자체가 오직 하나의 생명이지요. 다시 말씀드리면 우주를 몸으로 한다고 생각할 때는, 산도 부처님, 물도 부처님, 곤충도 부처님, 다 부처님 아님이 없습니다.

중생과 부처의 차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중생은 자꾸만 나누어 봅니다. 어째서 그런 것인가? 중생은 겉에 있는 상만 보고 집착합니다. 나라는 상, 너라는 상, 밉다는 상, 사랑한다는 상, 그런 상만 집착하는 것이 중생입니다.

성자는 모든 존재의 본바탕을 봅니다. 본바탕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똑같습니다. 불교에서 많이 인용하는 수파(水波)의 비유가 있습니다. 물과 파도의 비유입니다. 바람에 따라 파도가 일파만파로 갈라져도, 결국엔 똑같은 물입니다. 그것과 똑같이, 부처님은 광대무변한 우주바다의 물에 비유할 수 있고, 중생의 번뇌나 모든 분별심은 파도에 비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파도와 물이 다른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파도가 천파만파 부서지더라도, 이 파도는 결국 물입니다.

우리 중생이 인과의 법칙에 따라 산이 되고 하늘의 별이 되고 인간이 되고 금수가 되더라도, 똑같이 모두가 다 우주의 법인 그 부처님 몸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반야심경을 보나 금강경을 보나, 전부다 그런 도리와 성품과 현상의 관계가 담겨 있지요. 중생은 현상만 보는 것이고, 성자는 그 본바탕을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상염불은 가장 고도한 염불로써, 우주의 실상, 우주의 본바탕을 관찰하면서 하는 염불입니다.

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더라도, 덮어 놓고 “부처님은 저 밖에 계시다가도 우리가 염불하면 우리한테 와서 도와주시겠지”하는 것은 타력염불입니다. 보통 그렇게 많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애써서 나무아미타불하고 관세음보살하고 외면, 부처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가호를 주시고 복을 주시겠지하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소박한 방편 염불입니다. 염불은 염불이지만 참다운 염불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꼭 권하고 싶은 염불법은 실상염불입니다. 우주의 진리에 따르는 염불이 실상염불입니다. 소승법은 부처님께서 편의에 따라, 중생의 그릇에 따라, 중생 근기에 맞게 하신 말씀이지요. 그러나 진리는 절대 둘이 아닙니다. 소승이나 대승으로 나눈 것도 하나의 방편인 것이지, 하나의 진리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염불을 하든 의단을 품고 화두 공부를 하든, 그 본뜻은 모두가 부처님이 되어가는,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이 되는 데 있습니다. 왜 꼭 부처님이 되어야 하는가? 부처님이 되지 못하면 참다운 행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생은 누구나가 다 한도 끝도 없는 행복을 추구하고, 아는 것에도 기왕이면 세상만사 다 알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떤 면으로나 최선의 것을 추구합니다. 우리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입니다. 즉 우리 인간의 본바탕이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본성이 부처이기 때문에 한도 끝도 없이 다 구하는 것이지요. 부처라는 것은 어느 면으로 보나 완벽한 존재 아닙니까? 자비로 보나 지혜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어떤 면으로 보나 완벽한 존재 아닙니까? 자비로 보나 지혜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어떤 면으로 보나 완벽한 것이 부처입니다. 따라서 우리 본성이 부처라서 한도 끝도 없이 다 구하는 거예요.

상대 유한적인 것은 어떻게 다 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한계가 없으나, 물질도 한계가 있고 자원도 한계가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여기에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그러나 종교라는 것은 이렇게 갈망해 마지않는 눈에 보이는 존재를 모두 허망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실로 있다고 보지를 않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제법(諸法)이 공(空)이라 합니다. 제법이라고 하는 것은 주위에서 존재하는 모든 현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현상이 공입니다. 또는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이라고 합니다. 유위법이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상대적이고 유한적인 것인데, 마치 꿈이요 도깨비요 그림자요 거품과 같은 것입니다.

꿈이 형상이 있습니까? 꿈을 꿀 때는 실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꿈을 깨고 나면 무엇이 남습니까? 그림자는 빛이 비치고 모양이 있으면 모양에 따르는 그림자가 있지 않습니까? 분명히 보이지만, 또 분명히 없단 말입니다. 그와 똑같이, 우리 중생이 너요 나요 밉다 좋다 하는 것은 그림자 같고 꿈같다는 것입니다.

본래가 꿈이고 허깨비 같은 것을, 우리 중생이 잘못 봐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없는 것인가? 우리가 깨달아서 성자가 되면 허망하게 보일 것인데, 우리 중생은 미운 사람은 꼭 밉게 보이고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그것은 중생의 착각입니다. 그것은 중생이 잘못 보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인연 따라서 잠시간 허망상(虛妄像)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행(諸行)이 무상(無常)이라, 모든 존재는 어느 순간도 고유한 존재가 없습니다. 우리 세포도 역시 일초의 몇 천 분의 일초 동안도 세포가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순간순간 신진대사하며 변화합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조금도 같은 것이 없습니다. 어느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존재란 것은 다 그러합니다. 다만 중생이 잘못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육안의 참다운 실상을 회복해서 천안통을 통해야 비로소 존재의 본바탕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은 제 아무리 정밀한 현미경을 놓고 본다 하더라도, 물질이라는 한계내에서 보는 것이지, 물질을 떠나 버린 저쪽 세계는 볼 수 없습니다. 우리 불자님들, 모든 존재가 다 꿈이요 허깨비요 그림자 같다는 이 소식을, 아무리 섭섭해도 꼭 깊이 생각해 두셔야 합니다. 오직 문제는 생사해탈이라, 우리가 꿈을 깨서 참다운 진리를 향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기왕에 실상염불을 하시려면, 제일 고도의 경지의 마음으로 염불을 하십시오. 실상염불이란 그냥 마음으로 소리만 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본바탕을 그대로 생각하면서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온 우주 전체가 다 부처입니다. 이 사람을 보나 저 사람을 보나 이것을 보나 저것을 보나, 길 가다 독사를 보나 무엇을 보든지, 그 모든 것이 본래가 부처입니다. 모든 것을 부처로 보는 것이 실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불자님들, 우리의 본래 성품은 참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염불을 하시려면 그렇게 바르게 실상염불을 하십시오. 실상염불을 해야 비로소 참다운 공이 있단 말입니다. 실상염불의 공은 어디에다가 비길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것을 보나, 좋은 사람을 보나 나쁜 사람을 보나, 복 있는 사람을 보나 인상이 나쁜 사람을 보나 어떤 것이나 다 부처님으로 생각을 하면, 그때는 서로 상통이 됩니다.





청화 큰스님

1947년 세납 24세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화상을 은사로 득도.

출가이후 40여년 동안 사성암 벽송사 백장암 상견성암 상원암 남미륵암 칠장사 등을 거치며 수행정진하심.

1985년 전남 곡성군 죽곡면에 소재한 동리산 태안사에서 십년결사를 시작으로 회상을 이루시고 대중교화의 인연을 지으심.

1995년 한국전쟁으로 화마를 입었던 태안사를 중창복원하여 구산선문 중 하나인 동리산문을 재건하심.

1999년 미주포교를 위해 카멜 삼보사, 팜스피링 금강선원 등을 건립하시고 삼년결사를 수행하심.2003년 6월 육조단경 번역 11월12일 세수 81세 법랍 56세로 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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